AI로 산업현장 에너지효율 제고
韓 기술·운영-中 제조역량 결합
제3국 녹색시장 공동진출 모색

녹색 대전환(GX) 시대를 맞아 한국과 중국이 기후테크 시장에서 경쟁하면서도 공동 이익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순환자원·재생원료, 산업현장 에너지·자원 효율화, 제3국 녹색산업 프로젝트가 '3대 협력모델'로 제시됐다. 산업 전체를 협력 대상으로 묶는 대신 개별 사업의 경제성과 기술보호, 공급망 안정성을 따져 협력 범위를 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박한진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초빙교수는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6 기후테크이니셔티브 2차 토론회'에서 경제안보 시대 한·중 기후테크 협력 전략을 이같이 제안했다.

◇배터리 원료는 경쟁해도 '품질 검증'은 함께
첫 번째 협력모델은 순환자원·재생원료다.
배터리 재활용은 중국이 압도적인 제조·처리 기반을 확보한 분야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배터리 재활용 전처리 설비능력의 4분의 3 이상, 금속 회수·정제 설비능력의 약 90%를 차지한다. 중국은 2030년까지 주요 재생자원 연간 순환이용량 5억1000만톤, 자원순환이용산업 생산액 8조위안을 목표로 관련 산업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 이외 지역에서 배터리 재활용 금속 회수 주요국으로 평가된다.
양국이 폐배터리와 재생원료 확보를 놓고 경쟁하면서도 품질시험과 이력 검증에서는 협력할 수 있는 배경이다. 박 교수는 공동 품질시험과 원료 이력 검증, 공정 개선, 원료 공급계약 등을 협력 방안으로 제시했다.
글로벌 환경규제도 협력 필요성을 키운다. 유럽연합(EU)은 배터리 여권을 내년 2월부터 적용하고 재활용 함량 증빙과 재생원료 최소 사용비율도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재생원료를 유럽 시장에 판매하려면 어떤 폐기물에서 회수했는지, 함량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등을 증명해야 한다.
김영식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기술산업본부장은 경쟁이 큰 영역보다 데이터·검증·실증 등 비경쟁 영역에서 먼저 협력하고 기술 보호를 전제로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기후변화 감시·예측과 폐자원 순환경제, 대기오염 저감 등을 우선 협력 분야로 꼽았다.

◇AX·GX 결합…산업현장 효율 높인다
두 번째 협력모델은 산업현장의 에너지·자원 효율화다.
인공지능(AI)으로 설비 상태와 에너지 사용량을 분석하고 최적 운전조건을 찾아 생산량과 품질을 유지하면서 에너지·용수 사용을 줄이는 방식이다. 한국 기업의 공정·계측 기술과 중국의 산업용 부품·자동화·현장 적용 역량을 결합할 수 있다.
장기복 한국환경연구원 국가지속가능발전연구센터장은 기후테크 시장이 태양광·배터리·전기차 같은 제품·설비에서 데이터와 시스템 통합, 운영관리 서비스까지 포함하는 복합 산업생태계로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공정의 AI 기반 에너지효율·탈탄소 기술과 스마트그리드, 에너지저장·관리서비스 등을 유망 협력 분야로 꼽았다.
분산에너지도 협력 가능성이 큰 분야다. 신기준 한국전력거래소 분산에너지사업처장은 한국과 중국 모두 분산에너지를 시장에 참여시키고 성과를 검증해야 하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설비와 서비스 산업은 경쟁하되 시장제도와 증빙체계, 국제표준은 공개된 수준에서 함께 기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물과 에너지를 결합한 구체적인 공동실증 방안도 나왔다. 최홍열 한국수자원공사 에너지사업처장은 중국의 태양광 소재·모듈 제조기반과 수공의 수상태양광 설계·운영, AI 안전·품질관리 기술을 결합한 '한·중 공동 수상태양광 실증단지'를 제안했다. 댐·저수지에서 고효율 모듈과 계류장치를 시험하고 AI 기반 발전량 최적화 연구를 공동 추진하는 구상이다.

◇韓 엔지니어링+中 제조…제3국으로
세 번째 협력모델은 제3국 녹색산업 프로젝트다.
양국이 자국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대신 동남아·중동·중앙아시아 등에서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설계·운영·품질관리와 중국의 제조·공급망 경쟁력을 묶어 현지 수요에 맞는 패키지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임강락 한전기술 에너지신사업처장은 중국이 제조에서, 한국이 엔지니어링에서 강점을 지닌 만큼 보완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전기술이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베트남 해상풍력을 사례로 들며 중국산 해상풍력 발전기 가격이 국내 제조사 대비 40~5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양국의 강점을 결합하면 동남아 등 해외시장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택수 한국생산성본부 환경에너지컨설팅센터장은 공동진출의 성과가 국내 산업에 축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시장에서 첫 고객을 확보하고 현장 경험과 실적을 쌓아 후속 주문과 제3국 사업으로 연결하는 구조다. 해외사업 경험이 국내 연구개발과 제품 개선으로 돌아와야 지속 가능한 협력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승환 한국환경공단 탄소중립처장은 한·중 협력과 국내 핵심기술 내재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을 제안했다. 단기적으로 중국과의 가치사슬 협력으로 원재료·기술 경쟁력을 활용하되 장기적으로는 연구개발(R&D)을 통해 재활용 핵심기술을 국산화하고, 공급망 차질에 대비한 국내 대체 생산기반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협력 성과도 단순 계약 건수가 아니라 중복 시험과 서류 제출 감소, 고객 승인·재주문, 대체 공급선 확보, 에너지·용수 절감, 제3국 후속 계약 등으로 평가할 것을 제안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