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서 '과기·IT대사' 필요성 제기..."전담 외교라인 갖춰야"

이상민·변재일 의원, 적극 거론
글로벌기업 불공정에 대응하고
국가 과기 대외적 위상 강화 요구
"민간 전문가에 대사직 개방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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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과는 이메일로 소통하는 것뿐이다. 서버와 사업체가 어디에 있는지는 비공개로, 모르는 상황이다. 문제를 지적하려면 메일을 발신하고 그쪽에서 답변하거나 조치해 주는 상황이다.”

지난 7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발언이다. 텔레그램은 온 국민의 공분을 산 'n번방 사건'이 벌어진 곳이지만 우리는 문제와 대책을 따져 물을 만한, 제대로 된 의사소통 채널도 갖추지 못했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정보기술(IT) 외교 현주소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이에 특화된 외교 라인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과학·정보기술(IT)대사' 신설 논의가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부 국감에서 과기·IT 특임대사 신설을 제안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변재일 민주당 의원도 같은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IT 분야 외교 전담대사 도입을 요청했다.

변 의원은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불공정 행위 대응력 강화 차원, 이 의원은 노벨상 수상 등 국가 과기 위상 강화를 위해 전담 대사가 필요하다고 봤다. 두 의원 모두 5선 의원이어서 제안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 의원은 이날 국감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과기 외교 활동을 강화하고, 과기 분야 전문가를 특임대사로 임명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의견에)공감한다”면서 “특임대사와 관련해선 올해 할당량이 다 차 있지만 여유가 생기는 대로 고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과기·IT대사는 지난해 민주당 정책위원회가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한 소프트웨어(SW) 강국 도약 제언' 리포트에서 언급하며 공론화된 내용이다. 당시 정책위는 입법정책 권고 추진 현황을 점검하며 과기·IT대사 신설에 대한 과기정통부 검토 의견을 외교부에 전달했다. 외교부는 IT대사와 과기외교 전담 부서 신설 소요를 행정안전부에 제출했지만 이후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다. 야당에서도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20대 국회)이 관련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후순위로 밀렸다.

변 의원 측은 “IT 전담 외교라인이 있었다면 각국 관계기관 등과 협조, 텔레그램 문제에서도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필요성을 설명했다.

변 의원과 이 의원은 과기·IT대사 대상자를 외무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가운데에서도 임명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 의원 측은 공공외교대사, 기후변화대사, 국제안보대사 등 민간인 대상 임명이 가능한 직위에도 외무공무원이 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해당 분야 전문가가 대사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 측도 공무원·민간인 분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기·IT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다.

변 의원은 과기정통부, 방통위가 외교부와 적극 협의할 것을 주문했다. 일반 외교와 친교 업무를 넘어 국내 IT서비스 이용자 보호와 관련해 글로벌 기업과도 협상해야 하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변 의원은 미국·일본·영국·프랑스 등 IT 분야 대사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주요국의 사례를 언급하며 덴마크처럼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IT 산업 핵심 도시에 외교 전담조직을 신설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이 의원은 국가 과기의 대외적 위상 강화 차원에서 과기·IT 대사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우리 과학자가 상당 수준에 올라섰지만 노벨상에서 이렇다 할 수상 실적을 거두지 못한 것과 관련해서는 '과학 외교' 부족을 하나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 의원 측은 과기·IT대사 우선 파견 지역으로 스웨덴을 들었다. 노벨 평화상을 제외한 물리학상, 화학상 등은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 등에서 투표로 결정된다.

과기·IT대사 관련 법 개정도 추진한다. 법 개정 없이 외교부 장관 제청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지만 진전이 없는 만큼 법령에 과기·IT 분야를 특정해서 명시할 계획이다.

변 의원은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첨단 과기 경쟁이 심화하고 감염병 확산 등 국제 공조가 필요한 이슈가 많아지면서 소관 부처만으로는 외교 대응이 어렵다”면서 “과기와 IT 분야를 전담할 대사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우리 국가 경쟁력 과학 부문 인프라가 세계 3위 수준이지만 노벨상 수상과 지식재산 보호 정도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면서 “우리 과기 위상에 걸맞은 전문성을 갖춘 외교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