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게임쇼 '게임스컴 2026'이 익숙한 글로벌 지식재산(IP)의 귀환과 중국 게임사의 대규모 신작 공세가 맞붙는 무대로 달아올랐다. 서구와 일본 주요 게임사는 검증된 장수 IP를 리메이크하거나 새로운 프랜차이즈 작품으로 되살리는 데 집중한 반면 중국 게임사는 모바일을 넘어 PC·콘솔을 겨냥한 신규 IP를 대거 선보였다.
개최국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글로벌 게임 산업·문화계에서는 게임에 대한 인식 변화와 제작비 지원 등 산업 기반 강화를 위한 정책 교류와 논의도 활발히 이뤄졌다.
◇레이맨·히어로즈·위쳐…올드 IP의 화려한 귀환
올해 게임스컴의 대표적인 흐름은 오랜 시간 팬층을 구축한 유명 IP의 귀환이다. 개막 전야 행사인 '오프닝 나이트 라이브(ONL)'에서는 유비소프트 대표 플랫폼 액션게임을 새롭게 만든 '레이맨 레전드 리톨드'가 공개됐다. 1999년 출시돼 턴제 전략게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3' 역시 리메이크 버전으로 돌아온다.

CD프로젝트레드는 2015년 출시된 '위쳐3: 와일드 헌트'를 리마스터해 내달 선보인다. 기존 이용자는 무료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내년에는 신규 확장팩 '송스 오브 더 패스트'도 출시한다. '위쳐4'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장수 IP의 생명력을 다시 한번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CDPR 전시부스 역시 신작과 리마스터 소식을 접하려는 위쳐 팬덤이 몰리며 북새통을 이뤘다.
캡콤도 대표 고전 IP인 '메가맨' 신작 '메가맨: 듀얼 오버라이드'를 공개했다. 아울러 '드래곤즈 도그마2' 대형 확장 콘텐츠 시연과 '오니무샤: 웨이 오브 더 소드' 등을 선보였지만, 지난해 '몬스터헌터 와일즈' 당시와 같은 압도적인 현장 열기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 밖에도 '기어스 오브 워: E-Day', '파이널 판타지7 레벌레이션' 등 장기간 팬덤을 쌓은 기존 프랜차이즈 후속작과 재해석 작품이 주요 발표를 채웠다. 대규모 제작비와 긴 개발 기간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검증된 IP를 새롭게 활용하려는 글로벌 게임사의 전략이 올해 게임스컴에서 한층 선명해진 모습이다.

◇전시장 곳곳 점령한 中게임, 물량 공세
반면 중국 게임사는 신규 IP를 대거 앞세워 정면 승부에 나섰다. 텐센트 계열 레벨 인피니트와 넷이즈, 호요버스 등 은 게임스컴 주요 전시관에 대형 부스를 꾸리고 모바일부터 PC·콘솔, 대형 오픈월드와 액션게임까지 영역을 크게 넓혔다.
넷이즈는 신규 해양 오픈월드 RPG '시 오브 렘넌츠'를 별도 대형 부스로 선보였다. '제5인격'을 만든 조커 스튜디오가 개발한 완전 신작으로 PC·콘솔 시장을 정조준했다. 도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오픈월드 RPG '아난타' 역시 게임스컴을 통해 유럽 이용자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며 전시 부스에 참관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중국 청두에 기반을 둔 이클립스 글로우 게임즈는 '타이즈 오브 애니힐레이션'을 출품했다. 아서왕 전설과 붕괴된 런던을 결합한 싱글플레이 액션 어드벤처로 게임스컴에서 글로벌 이용자를 대상으로 처음 대규모 시연에 나섰다. PC와 플레이스테이션5, 엑스박스 시리즈를 겨냥한 타이틀이다.
호요버스도 새로운 협동 액션게임 '노더스 폴'을 처음 공개했다. 이미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원신'이나 '붕괴: 스타레일'에 머무르지 않고 신규 IP를 지속적으로 추가하는 모습이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중국 게임사의 물량 공세는 부스에만 그치지 않았다. 전시관과 전시관을 잇는 연결 통로마다 중국 게임 광고 배너가 이어졌다. 이동할 때마다 중국계 게임 광고가 시야에 들어올 정도였다.

◇'메트로 2039'에 몰린 유럽 팬심
우크라이나 개발사 4A게임즈의 '메트로 2039'도 현장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메트로' 시리즈의 최신작인 메트로 2039는 핵전쟁 이후 황폐화된 모스크바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기존 세계관을 이어간다. 이번 작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개발된 첫 메트로 본편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4A게임즈는 실제 개발 과정에서 정전과 발전기 사용, 미사일·드론 공격에 따른 업무 차질 속에서도 제작을 이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작품의 서사 역시 자유와 진실, 선택의 대가 등을 이전보다 강하게 다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원작자 드미트리 글루홉스키도 스토리 제작에 참여했다. 기존 메트로 IP의 탄탄한 유럽 팬덤에 우크라이나 개발사가 전쟁 중 제작을 이어왔다는 배경이 더해지며 전시장에서도 높은 관심으로 이어졌다.
◇외형은 세계 최대…게임스컴도 고민은 있다
게임스컴의 외형은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화려한 전시장 이면에는 고민도 존재한다. 중국 게임사의 공격적인 글로벌 확장 속에서 유럽 게임산업 역시 제작 경쟁력과 투자·인재 확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졌다. 개최국 독일조차 세계 최대 게임쇼를 보유했음에도 자국 게임 개발사의 시장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게임스컴 공동 주최기관인 독일게임산업협회는 개막을 앞두고 스타트업과 게임 제작 지원 확대, 전문인력 육성, 게임 세제 혜택의 조속한 시행 등을 정치권에 요구했다.

게임스컴을 찾은 한국 국회의원단도 독일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연방 연구·기술·우주부 관계자들과 만나 양국의 산업 지원정책을 논의했다. 독일 측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같은 중앙 단위 지원체계와 개발사 육성 사례에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참관단장을 맡은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독일도 게임 제작비 지원과 개발사 육성을 두고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며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같은 중앙 단위 지원체계와 개발사 육성 사례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독일 의회에도 게임산업에 관심이 높은 의원들이 있어 향후 양국 국회 차원의 교류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게임쇼라는 타이틀만으로 지속적인 흥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신작과 새로운 IP를 확보하고 급변하는 글로벌 게임산업에서 개최국 산업 기반을 어떻게 함께 키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게임스컴 역시 안고 있다.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가 참가사와 콘텐츠 경쟁력을 놓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점이다.
쾰른(독일)=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