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시론] 거대한 변화의 시대, 혁신 기술의 미래

강종렬 SK텔레콤 사장
강종렬 SK텔레콤 사장

몇 해 전부터 현존하는 세계의 혁신 기술이 총집결하는 지상 최대의 전시회로 자리 잡은 CES 2023이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다. 글로벌 첨단 기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CES는 팬데믹 이후 일부 규모가 축소되기도 했으나 올해는 팬데믹 이전 규모의 오프라인 행사가 개최됐으며, 행사 슬로건을 '기술 혁신에 동참하라'(Be In It)로 내세웠다

지금 지구 곳곳의 상황은 어느 하나 녹록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으로대표되는 여러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 강화되는 보호무역주의와 글로벌 공급망 문제, 경기침체 위기까지 그야말로 세계가 정치, 경제 및 사회의 불확실성 속에 비즈니스는 물론, 인간 삶의 생존에 대한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투자업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하워드 막스(미국 오크트리 캐피털 창립자)는 2022년 말 발표한 메모에서 이 시기를 '거대한 변화(Sea Change)'로 묘사했다. 그는 자신의 53년 간 투자 인생 중에 지금을 세 번째 Sea Change라 부르며, 세상의 엄청난 변화 앞에 자신이 서 있다고 표현했다.

거대한 변화 시기에도 기술 혁신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과 지속 가능성에 더욱 주목하며 수많은 기술기업과 혁신가가 1월 초 라스베이거스로 몰려들었다. SK텔레콤 역시 전시관을 마련하고 빅테크를 비롯한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펼치는 첨단 기술의 지형도를 살피고,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CES 2023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올해 CES는 코로나19로 줄었던 참여 기업 수가 회복 모드에 들어갔지만 미-중 무역 갈등과 코로나19 재확산 영향 등으로 중국 참여 기업 수가 팬데믹 이전만큼 회복되지는 않았으며, 구글·아마존 등 빅테크의 복귀에도 특별한 혁신이 예년에 비해 적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가전관보다 넓은 전시장을 마련해서 큰 관심을 끈 자동차-배터리 섹터, 스마트홈과 휴먼 시큐리티, 다양한 로봇, 디지털 헬스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섹터 등의 전시장은 현존하는 혁신 집결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였다. 세상의 진보라는 수레바퀴를 돌리는 기술의 핵심 트렌드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모빌리티 △ESG에 주목했다.

◇'생성 AI' 스타트업에 주목

올해 CES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가전과 서비스 영역의 기반 기술로 자리를 확고히 한 AI를 꼽을 수 있다. 자율주행시스템, 다양한 스마트 생활 로봇들과 디지털 헬스케어 장비들에 침투하고 있는 AI가 전면에 내세워졌다.

올해 CES에서 무엇보다 주목받은 분야는 AI 분야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생성(Generative) AI다. 사람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만드는 ChatGPT, 텍스트로부터 이미지를 생성하는 Dall-E와 미드저니(Midjourney) 등 AI를 이용해서 사용자가 콘텐츠 생산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생성 AI 모델들이 당당하게 이번 CES에서 전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CES 혁신상을 받은 국내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의 AI 글쓰기 훈련 서비스 '뤼튼 트레이닝'이 인상 깊었다. 이용자의 생각을 글로 완성하는 데 이용자가 반복해서 작문을 연습하는 것을 돕는 AI 서비스다. 이용자가 입력한 글쓰기 주제를 AI가 질문하고 참고 자료를 제안하면 이용자는 AI의 가이드에 따라 글쓰기 과정을 반복하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한다.

유럽 기업 아카펠라 그룹(Acapela Group)은 뇌성마비 등 음성 커뮤니케이션 장애가 있는 이용자에게 음성 대화를 지원하는 '마이 오운 보이스'(My Own Voice) 서비스를 내놓았다. 뇌성마비나 실어증 환자인 이용자가 50여개의 문장을 읽으면 환자의 개인 특성에 맞는 음성 대화를 생성할 수 있도록 하는 데 AI를 활용한 것이다.

SK텔레콤이 투자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인 AI스타트업 몰로코 등도 전시에 참여한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높은 관심을 끌었다. 특히 생성 AI의 경우 세계 최초의 한국어 GPT-3 기반 AI 상용서비스로 선을 보인 후 지속적으로 진화해 온 SK텔레콤의 성장형 AI 서비스 에이닷과 접목될 경우 높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또한, 노동의 영역들을 대신하는 AI가 적용된 로봇이 훨씬 많아지고 상용화도 확대되고 있다는 걸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눈에 띈 제품은 화장실 변기에 다양한 주파수로 빛을 보내는 분광장치를 설치해서 수집한 소변 데이터를 통해 사람의 건강 상태를 AI 기반으로 실시간 분석·진단해 주는 올리브 다이어그노스틱스(Olive Diagnostics)의 제품이었다. 의료 진단기기 분야에서 AI의 활용은 오래된 일이지만 분광법을 활용해서 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이 AI 활용이 보편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CES 2023에서 확실히 드러난 건 AI가 모빌리티를 비롯해 여러 미래 산업과 비즈니스의 고도화를 위한 기반 기술로 자리 잡은 것과 동시에 AI 자체가 상업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AI가 상업화 가능성을 높일수록 최근 ChatGPT가 논문 공저자로까지 올라오며 일으키는 사회적 이슈를 비롯해 애초에 고민하던 AI의 투명성, 설명 가능성, 공정성 등 AI 윤리와 원칙을 둘러싼 고민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ET 시론] 거대한 변화의 시대, 혁신 기술의 미래

◇전기차 전환 가속 '모빌리티'

CES 2023이 보여 준 미래 기술의 핵심 트렌드 두 번째는 모빌리티다. 2010년 이후 자동차 시장의 화두는 줄곧 자율주행과 전기차였다. 최근 넷제로 트렌드를 타고 쏟아져 나오는 각국의 친환경 정책들이 주요 완성차 업체에 내연기관 자동차 출시를 줄이고 전기차로의 전환을 추동하는 배경이 되며, 전기차는 2025년 이후 급격한 양산 커브를 그릴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CES에는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현대차 등 주요 완성차 업체가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전기차 후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기업과 모빌리티 부품, 서비스 솔루션 업체가 대거 참여해 모빌리티 기술 향연을 펼쳤다.

구글은 부스 전시의 키워드를 '안드로이드 오토'로 띄우며 이를 탑재한 웨이모(Waymo)의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였고, 아마존은 전기차 업체인 루시드와 손잡고 차량 내에 자사 음성인식 AI 에이전트인 알렉사 탑재를 홍보했다. 이제 자동차가 단순한 차량이 아니라 IT기기로서, 향후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될 모빌리티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빅테크들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전기차 확대 초반부에 동력기관으로서 핵심 역할을 담당해야 할 배터리 분야의 혁신을 살펴봤다. 지금 배터리 분야는 글로벌 공급망 불안의 타격을 심하게 받으며 25년 전기차 양산시기 대비를 위한 기술개발과 투자 경쟁이 치열한 분야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이번 CES에서는 배터리의 새로운 혁신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나마 SK온이 특수 코팅기술로 급속 충전이 가능한 하이니켈 배터리를 전시하고 혁신상을 수상하며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혁신을 선보이는 정도였다. 내년에는 차세대 전지와 충전기술, 그리고 배터리 플랫폼화 등의 혁신기술들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CES 2023에서 살펴본 미래 모빌리티 혁신은 한 마디로, 전기차로의 전환 가속화와 전기차 생태계의 주도권을 둘러싼 혁신 경쟁이라고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 전환이 빨라져 차량도 스마트폰처럼 통제할 수 있는 시대에 전기차 벨류체인의 주도권은 어디로 향할 지가 지속적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전기차와 함께 이번 CES 모빌리티 분야에서 주목받은 또 다른 아이템은 도심항공교통(UAM)으로, SK텔레콤은 이번 CES 2023에서 UAM 기체 관련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가고 있는 파트너사인 미국 Joby와 함께 UAM 기체모델과 2030년 부산의 모습을 하늘에서 볼 수 있는 가상현실(VR) 체험을 선보여 관람객들로부터 열띤 호응을 얻었다. 미래모빌리티의 총아로 불리는 UAM 분야에서 글로벌 파트너사와 함께 선보인 선도적인 전시로 미래 K-UAM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은 이번 CES에서 국내기업이 일궈낸 값진 성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세상으로…'ESG' 기술

CES 2023을 통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기업 가운데 하나가 미국 농기계업체 '존디어'(John Deere)다.

존디어는 토양의 상태를 측정하는 카메라 센서와 위성항법장치(GPS) 데이터를 통해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최적지에서 작물에 최적의 성장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수확을 극대화하는 걸 기술로 구현하기로 유명하다. AI가 탑재된 존디어의 무인 트랙터가 작물 씨앗의 위치를 결정하고, 씨뿌리기에서 양분 공급과 수확에 이르기까지를 기술로 관리하는 애그테크(Agtech)를 통해 농업 인력도 효율화하고 비료도 효율적으로 써서 실제로 탄소 감축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인구는 느는데 농촌 노동력은 감소하니 더 적은 비용과 인력으로, 그것도 탄소를 줄이는 농법은 기술이 아니면 해법이 없다는 존디어 최고경영자(CEO)인 존 메이의 주장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또한, 정밀발효 기술을 활용한 대체단백질 대표기업인 퍼펙트데이(Perfect Day)의 아이스크림 시식 코너에 준비된 양이 소진되어 추가 투입되는 등 대체 단백질에 대한 높은 관심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SK와 삼성, 파나소닉 등 기업들이 '탄소 없는 미래'와 '탄소중립' 목표 달성 등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기술을 강조한 것도,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ESG 기술 방향을 명확히 하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CES를 주최한 미국 소비자 기술협회(CTA)는 CES 기조발제를 통해 “2023년에도 기술 변화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다. 기술은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들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혁신을 향한 동력은 경제 침체기에 내재화되고 응축되었다가, 경기가 회복될 때 그간 응축됐던 것들이 폭발하며 새로운 힘으로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혁신의 작동 원리일 것이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CES 2023에서 보여준 내실화된 기술들이 향후 기술 혁신의 씨앗들로 발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해석해 보고, 현재의 불안을 넘어 희망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시사점이 아니었을까 한다. 우리는 아마도 이번 CES 2023에서 이 시대의 앞선 기술자와 혁신가들이 계속해서 굴려갈 수레바퀴를 통해 우리가 다다를 더 나은 곳을 상상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이 이 시대를 극복하는데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라는 렌즈로 CES 2023 다시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강종렬 SKT ICT인프라담당(사장) 겸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PO)

〈필자〉강종렬 사장은 30년 동안 유무선 네트워크에서 경력을 쌓은 통신 전문가다. 1989년 유공 입사, 1994년 SK텔레콤에 입사했으며 2004년 상무로 승진, 무선 네트워크 관련 업무를 담당하다 2014년 SK브로드밴드(유선) 네트워크 부문장에 임명됐다. 그러다 이듬해 SK텔레콤 기업문화부문장을 거쳐 2017년 SK텔레콤의 네트워크를 총괄하는 ICT인프라센터장이 되면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21년 CSPO 겸직으로 사장 승진하며 SK텔레콤의 안정적인 네트워크 운용뿐 아니라 안전까지 총괄하는 역할을 책임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