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떠넘긴 美에 李 “수용 불가”…2000억불 대미 투자 합의 '급제동'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함께 웃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함께 웃고 있다. 연합뉴스

대미 투자 프로젝트 합의가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다. 미국 측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등 고위험 사업 투자를 압박하는 동시에 전체 프로젝트에 대한 수익 배분 구조 변경과 자금 선집행을 요구하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동의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협상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 주 미뤄졌던 정부의 국회 보고 일정마저 불투명해진 가운데, 미국은 우리나라에 호르무즈 파병과 반도체, 쿠팡 등 통상 현안까지 전방위로 압박을 높이고 있다.

20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애초 지난 17일 국회 보고를 거쳐 대미 투자 프로젝트 주요 내용을 대외에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연기했다. 산업부는 오는 21일 또는 22일경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보고하는 방안을 열어두고 물밑 조율을 이어가고 있지만, 최종 일정 확정까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보고 일정이 정해진 것은 없다”며 “국익에 부합하는 합의안을 도출하기 위해 협상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상 난항의 배경에는 '상업적 합리성'을 무시한 미국 측의 일방적인 조건 변경 요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대통령 역시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이를 직접 지적하며 제동을 걸었다. 이 대통령은 “실무 차원에서 거의 합의가 됐다고 하는 데 내용을 보니까 동의하기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 다시 얘기 중”이라며 투자금 회수와 수익 배분, 손실 처리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국익이 훼손되지 않고 한미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사업을 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양국은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 대형 원전 8기 건설, 알래스카 LNG 개발 등 3개 프로젝트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 중 사업비만 약 440억달러에 달하는 알래스카 LNG는 험지 공사 난이도와 천연가스 가격 변동성 탓에 사업 리스크가 매우 크다. 앞서 정부는 엄브렐러형 특수목적법인(SPV)을 설립해 여러 프로젝트의 수익을 한데 모아 원리금을 상환함으로써 개별 사업의 손실을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 측이 기존 합의를 깨고 프로젝트별 개별 손익 분배를 요구하면서 대규모 부실 리스크가 한국에 전가될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 연간 투자 한도(200억달러) 중 절반을 올해 말까지 선집행하라는 무리한 요구까지 겹쳤다.

미국의 압박은 통상과 안보까지 전방위로 뻗치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에게 대미 투자 약속의 신속한 이행은 물론, 반도체 협력과 쿠팡 조사를 겨냥한 미국 기업 사업 환경 보장 등 통상 압박을 쏟아냈다.

대외 안보 이슈 역시 협상을 짓누르는 뇌관이다. 최근 친이란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를 사상 처음으로 공습하는 등 중동 정세가 전면전 위기로 치닫자, 미국은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자유통항을 명분 삼아 한국에 사실상의 군사적 기여(파병)를 거듭 압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전쟁 불관여·불개입' 원칙을 강조하며 중동 전쟁 직접 개입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핵추진 잠수함과 원자력 연료 농축·재처리 등 양국 간 핵심 안보 과제마저 대미 투자 선결과 연계돼 있어, 미국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없는 한 대미 투자 프로젝트 합의는 상당 기간 진통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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